관심사항/경산 통나무집

전원생활 잡지 2012. 1월호 기사

지암거사 2012. 5. 15. 15:29

 

 

 

 

이덕근·박정희 씨 부부의 통나무집

흔히 통나무집이라고 하면 사람이 사는 집보다는 카페나 펜션 같은 건물을 떠올린다. 통나무집은 왠지 멋과 낭만이 있을 것 같지만,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 때 문이다. 통나무집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을 깨뜨린 집이 있다. 멋과 낭만을 살리면서 살림집으로도 손색없이 지은 이덕근 ·박정희 씨 부부의 통나무집.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이 집 에는 상쾌한 나무 향 사이로 새로운 일상이 스며들고 있다.

글 김봉아 기자 사진 박경섭(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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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지나 30분쯤 달렸을까. 높은 빌딩들은 금세 사라지고 황량한 겨울 들판이 나타난다. 경북 경산시 남천면 삼 성리, 마을에서 산 쪽으로 조금 오르자 반듯한 세모지붕에 굵은 통나무가 웅장한 멋을 드러낸 집이 가파른 비탈 위 에 우뚝 서 있다. 이덕근(61)ㆍ박정희(56) 씨 부부의 통나무집이다. 고향인 대구에 있는 일과 집을 완전히 접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부부는 대구에서 그리 멀지 ?은 이곳에 집을 지었다. 대구의 집에는 딸이 살고 있고, 은퇴는 했지만 이씨에겐 대구로 나가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창 가득 푸른 소나무를 들인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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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이곳에 땅을 산 것은 2008년. 근처의 마을에 사는 동서의 집에 자주 들르곤 하다 당시 산딸기밭이던 이 터를 발견했다. 비탈이 심해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지만, 부부는 터 아래의 소나무숲에 반했다.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소나무 수십 그루가 몸을 뒤틀며 서 있는 숲을 자연 정원으로 삼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1200 평의 땅를 산 뒤 집므 짓기 위해 200평을 대지로 전환했다.

오래전부터 시골에서 사는 꿈을 키워온 이씨는 책과 인터넷 등을 찾아보며 집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잘 지어진 집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동안 봐온 다양한 형태의 집들 중 그가 짓고 싶었던 집은 목조주택과 통나무주택, 단 열이 잘된다는 ALC(경량 기포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흙집이나 한옥은 살기에 불편할 것 같아 고려하지 않았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아내가 시골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원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형태 중 통나무집에 마음이 끌린 것은 통나무집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갖고 집 짓는 과정을 하나하 나 보여주는 건축가 김용근 씨의 인터넷 카페‘행복한 집짓기(cafe.daum.net/ewoodman)’를 보면서부터였다.

“흔히 카페나 펜션을 통나무집으로 짓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의 틈이 벌어지거나 지저분한 경우들이 있어 과연 살림집으로도 가능할까 고민스러웠거든요. 그런데 건축가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보고 지은 집을 찾 아가보았더니 살림집으로도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통나무집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0여 년 됐다고 하는데, 초기에 잘못 지어진 일부 집들로 인해 통나무집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생겼다고 합니다. 통나무집은 서구에 서도 살림집으로 오래도록 쓰고 있는 만큼 제대로만 지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통나무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 귀틀집처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통나무를 차곡차곡 쌓는‘풀나 치(full-notch)’방 식과, 한옥처럼 골조를 세우고 벽체를 만드는‘포스트앤빔(post&beam)’방식이다. 이씨는 통 나무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싶어 풀나치 방식으로 짓기로 하고 건축가와 함께 설계를 했다. 처음엔 단층으로 하려고 했지만,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올 때를 대비해 복층으? 설계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과 안방, 2층에는 자녀들이 지낼 방과 다실을 배치했다.

공사는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집을 앉힐 터 를 만드는 일은 이씨의 몫이었다. 비탈을 반듯하게 깎아 옹벽을 쌓고 진입로를 포장하는 등 이씨는 직접 인부에게 지시를 해가며 기초공사를 했다. 그동안 건 축가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통나무를 다듬어 미리 집을 짜보는 작업을 했다. 경 사가 심한 현장에서 모든 작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작업장에서 미리 맞춰본 뒤 옮겨와 다시 조립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집을 짓는 데에는 15톤 트럭 3대 분량의 통나무가 사용됐다. 목재는 캐나다 산 더글라스퍼로, 지름 35~40㎝에 길이는 11m에 달했다. 생나무의 껍질을 손으 로 벗겨 작업하는 풀나치 통나무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무의 수축을 감안해 시공하는 기술로, 이를‘ 세틀 링(settling, 내려앉으며 자리 잡음)’이라 부른다. 보통 2~3년 정도 지나면 나무가 거의 마르는데, 나무가 수축하면 서 내려앉는 걸 예상해 창틀이나 문틀 등에 수축되는 높이만큼 목재를 대는 것이다.

“1층에 통나무를 13단 쌓았는데, 3년동안 1단에 1센티미터씩 수축해 전체적으로 13㎝ 정도 내려앉는다고 합니 다. 그래서 건축가가 1년에 한 번씩 와서 문틀의 목재를 내려앉은 만큼 잘라줍니다.” 지붕의 경사로 인해 윗부분이 점점 좁아지는 2층은 통나무로 골조를 세우는 포스트앤빔 방식으로 시공했다. 그 런 다음 골조 사이에 단열재와 합판을 대고 핸디코트로 마감했다. 외벽의 통나무에는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집을 감 싸듯 데크를 둘렀다. 지붕에는 금속기와를 얹고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처마를 길게 뺐다.

나무의 수축과 훼손 막으면서 통나무집의 멋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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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집에서 사는 일은 분위기 좋은 통나무 카페나 펜션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통나무집 에 산 지 이제 3년. 여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살다 보면 단점도 보이게 마련이다.

부부가 말하는 첫 번째 단점은 공간 활용이다. 통나무의 벽체가 두꺼워 설계상의 면적보다 실제 면적이 좁아졌 고, 공간을 작게 분할하는 데에도 한?가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층고가 7m로 높아 난방비가 많이 든다는 점인데, 이 문제는 지난해 벽난로를 설치하면서 간단히 해결했다. 세 번째 단점은 굳이 꼽자면‘비용’이다. 집을 짓는 데 든 비용은 평당 500만 원 정도. 흔히 통나무집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목조주택 등 웬만한 전원주택을 짓는 데 300만~400만 원이 들고, 한옥은 500만 원 이상 드는 것과 비교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그럼, 부부가 말하는 통나무집의 좋은 점은 뭘까? 부부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먼저 이야기를 한다. 집을 바라보 는 애정 어린 눈빛. 부부는 이미 집의 단점까지도 모두 따뜻하게 품어버린 듯 만족스럽고 편안한 모습이다.

“벽 전체가 나무로 돼 있어 공기도 좋고 건강도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나이테며 옹이며 하나하나 제각각인 나 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통나무집은 나무 자 체가 골조라 튼튼하고 안정적이어서 지진에도 강하다고 합니다.” ‘충분히 살 만한 집’이라는 것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은 은한 나무 향 사이로 따뜻한 차 한 잔 건네며 낭만을 즐기는 일은 이제 부부에겐 일상이 되었으리라.